코닥 H35로 담은 여수, 생일에 떠난 당일치기

코닥 H35로 담은 여수, 생일에 떠난 당일치기
2024년 가을, 생일에 친한 친구를 만날 겸 급 여수로 당일치기를 떠났다.
멀리 가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극 J 인 내가 나름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라 그런가 그날 하루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즉흥 여행인 만큼 가볍게 코닥 H35 하나 들고 다녔는데, 하프프레임이라 필름 한 롤로 두 배를 찍을 수 있어서 부담 없이 셔터를 눌렀던 하루였다.

여수 하면 역시 해상케이블카다. 매표소 앞에 걸린 안내판부터 찍어뒀는데, 나중에 스캔해보니 그 사진 한 장에 그날의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건너는 동안, 주황색 캐빈 너머로 반짝이는 물결이 끝없이 펼쳐졌다.


코닥 울트라맥스 400은 이런 물빛을 유독 예쁘게 담아낸다. 초록빛과 은빛이 섞인 바다색이 필름 특유의 따뜻한 톤으로 부드럽게 살아났다.

케이블카 정류장 근처에는 하트 모양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곳이 있었다.
수백, 수천 개는 되어 보이는 나무판들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걸 보면서, 다들 이곳에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옆에는 돌과 나무 조각을 쌓아 올려 만든 탑도 있었는데, 담쟁이덩굴이 감고 올라간 모습이 묘하게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다리도 참 많이 찍었다. 붉은 케이블이 하늘로 뻗어 있는 대교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는데, 하프프레임 카메라라 같은 다리도 매번 다르게 잘렸다.
어느 사진은 다리 전체가 시원하게 들어갔고, 어느 사진은 케이블 몇 가닥만 프레임에 걸쳐 있었다.
계획한 적 없는 구도들인데, 오히려 그래서 다리를 여러 번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항구 쪽으로 내려가서는 정박해 있는 어선들을 찍었다.
파란 방수포로 덮인 배들이 나란히 묶여 있고, 그 뒤로 산자락을 낀 마을이 이어졌다.
붉은 등대가 방파제 끝에 서 있는 사진도 마음에 든다.
초록빛 바다와 빨간 등대의 대비가 필름으로 찍으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특별한 계획 없이 걷고, 타고, 찍기만 한 하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힘 빼고 다닌 여행의 사진들이 나중에 보면 제일 좋다.

생일이라고 거창하게 뭘 한 것도 아닌데, 베프랑 케이블카 타고 바다 보고 소원판 구경한 게 다인데, 그 하루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여수는 그렇게, 계획 없이도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한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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